지난달 26일(현지시간) 미국 메릴랜드주 볼티모어에서 컨테이너선과 충돌해 붕괴된 ‘프랜시스 스콧 키 브리지. <연합뉴스>
“미국 대선 이후 글로벌 물류시장은 완전히 판도가 달라질 수 있습니다. 한국 기업이 미리 준비하지 않으면 큰 낭패를 볼 수 있습니다.”
미국 동부 볼티모어항 교량 붕괴사태로 항구기능이 완전 마비된 가운데, 한국 기업이 글로벌 공급망 강화에 서둘러 나서야한다는 주문이 나왔다.
이성우 한국해양수산개발원 한미물류공급망연구센터장은 매일경제와의 인터뷰에서 “항구를 가로지르는 다리하나가 무너지면서 미국 자동차 수입과 석탄 수출 허브역할을 하던 볼티모어항이 올스톱 됐다”며 “뇌에 작은 혈관이 막히면 사람이 쓰러질 수 있는 것처럼 물류 네트워크는 때로는 국가의 경쟁력을 좌지우지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볼티모어항이 개점휴업에 들어가면서 큰 화물은 인근 뉴욕·뉴저지 항구, 작은 화물은 인근 필라델피아 항구 손을 빌리고 있지만 여전히 병목현상이 심하다. 이 센터장은 “가뜩이나 파나마 운하 갈수기에 후티 반군 사태까지 겹쳐 글로벌 공급망이 살얼음판을 걷는 상황”이라며 “미국 대선을 앞둔 올해 한국이 대책마련에 나서지 않으면 앞으로 두고두고 물류에 발목잡혀 곤혹을 치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최근 KMI가 이 센터장 주도로 ‘미국 해운정책의 현재와 미래’ 보고서를 낸 것은 이 같은 이유에서다. 미국 정부의 정책기조인 자국시장 보호 해운정책이 대선 이후 더 강화될 가능성이 높아 선제적인 대응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다만 어느 당이 승리하느냐에 따라 각론에 차이가 있다.
미국 대선에서 민주당이 승리한다면 기존의 자국보호 기조는 유지될 것으로 보인다.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정책들도 한층 탄력을 받을 공산이 크다. 이에 따른 비용상승분은 외항 선사에게 전가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서는 지적한다.
보고서에 참여한 이은수 뉴저지시립대 교수는 “미국은 세계 최대의 소비시장을 바탕으로 국제 운임을 좌지우지할만한 ‘바잉파워’를 갖추고 있다”며 “가뜩이나 인플레이션 문제가 심각한 가운데, 늘어나는 물류비 부담을 최대한 미국이 부담하지 않는 쪽으로 힘을 쓰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공화당이 집권해도 자국보호 정책 기조만큼은 변화가 없을 전망이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재선 공약으로 내놓은 어젠다(Agenda) 47에 따르면, 공화당은 미국의 모든 수입에 대해 10%의 보편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 센터장은 “미국은 펜데믹 이후 발생한 물가급등의 원인 중 하나가 100% 외국 선사로 이뤄진 글로벌 해운업체들이 부당이득을 취했기 때문이라는 인식을 하고 있다”며 “민주당과 공화당 모두 공급망 문제만큼은 비슷한 철학을 공유하고 있어 설사 트럼프로 정권이 넘어간 이후에도 상황은 녹록하지 않다”고 진단했다.
따라서 미국 대선을 앞둔 한국 물류기업에게는 전략적인 사고가 필요하다. 누가 집권하느냐에 따라 미국 공급망 정책 각론이 달라질 수 있어 섬세한 대책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결국 관건은 한국이 얼마나 많은 대안을 가질 수 있느냐로 모여진다. 어떤 당이 집권하더라도 한국입장에서 대처할 수 있는 카드가 많으면 미국의 압박에도 한국의 이익을 지켜낼 수 있다는 얘기다.
부산항. <연합뉴스>
이 센터장은 “지금 한국의 미국 물류 네트워크는 서부에 주로 몰려있지만 이를 동부로 대폭 확대하고, 캐나다와 멕시코 등 미국 인접국가를 십분 활용해 씨실과 날실을 엮는 촘촘한 네트워크를 완성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예를 들어 미국 내 특정 항구가 막히더라도 육상을 통해 인접 항구, 더 나아가 캐나다나 멕시코로 화물을 이동시켜 그곳에서 배에 띄워 보낼 수 있다면 미국 화주의 무리한 요구에도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캐나다와 멕시코 그리고 미국은 물류분야 협정인 ‘USMCA(US-Mexico-Canada agreement)’로 묶여있어 이를 적극 활용할 필요성도 제기된다.
이를 위해 미국 시장 곳곳에 물류센터와 터미널을 확보하고 유사시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는 네트워크 확장이 요구된다. 또한 미국 양당에서 물류관련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고위정치인이 참가하는 컨퍼런스 등 소통채널을 확대해 미국 정치권에 한국의 입장을 관철시킬 수 있는 체계를 활성화시켜야 한다고 보고서는 지적한다.
이 센터장은 “결국 한국 입장에서는 민주당과 공화당 공약 각론에 매달려 지엽적인 대책을 발굴하는 것보다는 한국의 물류 파워 자체를 높일 수 있는 궁극적인 대안이 필요하다”며 “더 늦기 전에 한국정부도 시급한 대책마련에 나서려는 적극성을 발휘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출처 : 매일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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