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박 계속 건조하는데 물동량 감소… 본격 불황 사이클로
국제 해운 운임 지표인 상하이컨테이너운임지수(SCFI)가 지난 3일 기준 1006.89를 기록했다. 사상 최고치를 기록한 지난해 초(5109.6) 대비 80% 이상 하락한 수치다. SCFI는 세계 15노선의 운임을 종합 계산한 지수로, 수치가 클수록 해상 운임이 높다는 의미다. 해운 업계에선 SCFI가 곧 1000 밑으로 하락하리라 보고 있다. SCFI는 코로나 때문에 글로벌 물류망이 마비되면서 고공 비행을 해왔다. 하지만 작년 가을부터 급락하더니, 이제는 코로나 직전인 2020년 1월(1022.58)과 엇비슷한 수준까지 떨어진 것이다.
역대 최고 수준으로 치솟았던 해상 운임이 바닥을 모르고 추락하고 있다. 지난해 사상 최대 영업이익을 기록한 해운사들은 최근 급격한 실적 악화로 고전하고 있다. 해운 업계에선 “본격적인 위기는 이제 시작”이라는 말이 나온다. 2~3년 전 해운사들이 발주한 선박들이 노선에 본격적으로 투입되고 있기 때문이다.
해상 운임이 급락하는 것은 전 세계 물류망이 정상화되는 상황에서 글로벌 경기 침체로 수요가 급감한 탓이다. 실제 세계무역기구(WTO)는 올해 세계 무역량이 지난해보다 1% 증가하는 데 그칠 것이라는 전망을 지난해 10월 내놨다. 지난해 4월까지만해도 올해 무역량이 3.4% 증가할 것으로 예상했는데 이를 낮춰 잡은 것이다. 세계 2위 해운사 덴마크 머스크의 빈센트 클레르 CEO는 이달 초 블룸버그TV 인터뷰에서 “올해 전 세계 컨테이너 선적량이 최고 2.5% 줄어들 것으로 본다”고 했다.
더 큰 악재는, 해운 수요는 줄고 있지만 선박 공급은 계속 늘어난다는 점이다. 코로나 기간 세계 해운사들이 대거 발주한 컨테이너선이 올해부터 순차적으로 인도될 예정이기 때문이다.
해운 전문 분석 기관 드루리와 알파라이너에 따르면 현재 전 세계 해운 업체들의 선박 발주량은 900척이 넘는다. 세계 1위 해운사 스위스 MSC의 발주량이 133척, 프랑스 CMA CGM이 77척, 대만 에버그린이 49척에 이른다. 올해에만 현재 전 세계 선복량(배에 실을 수 있는 화물 총량)의 5.6%에 이르는 140만TEU(1TEU는 길이 6m 컨테이너 하나)가 추가될 전망이다.
국내 대표 해운사인 HMM 역시 2021~2022년 새 선박을 대량 발주했다. HMM은 2021년 1만3000TEU급의 대형 컨테이너선 12척을 발주해 순차적으로 정기 노선에 투입할 예정이다. 지난해에도 컨테이너선 3척을 발주했다. 현재 HMM의 선복량은 지난해 말 기준 81만6000TEU인데, 새로 발주한 선박이 모두 인도되면 100만TEU 이상으로 늘어나게 된다.
국내 해운 업계 관계자는 “지난 10년간 노선을 공유해 오던 글로벌 1·2위 선사 MSC와 머스크가 오는 2025년 동맹 관계(얼라이언스)를 청산하기로 했다”며 “앞으로 본격적 치킨 게임(죽기 살기식 가격 경쟁)이 시작될 것”이라고 말했다.
코로나 특수를 누려 온 국내 해운 업계는 실적 하락을 피하기 어려울 전망이다. HMM은 지난해 상반기에만 매출 10조원, 영업이익 6조857억원의 역대 최상급 실적을 거뒀다. 하지만 시장조사 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HMM의 올해 1분기 매출은 3조3133억원, 영업이익 1조1218억원으로 지난해 1분기 대비 각각 32.5%, 64.3% 하락할 전망이다. 지난해 말에는 근속 10년 이상 직원 대상으로 희망 퇴직을 실시했다.
HMM 관계자는 “코로나 기간 벌어들인 수익으로 초대형 선박 도입과 탈황 설비 부착 같은 체질 개선 노력을 해왔다”며 “이런 선제적 투자가 불황기에 경쟁 해운사보다 높은 수익을 낼 수 있는 원동력이 될 것”이라고 했다.
팬오션 역시 지난해 3분기까지는 매출 1조8365억원, 영업이익 2244억원의 양호한 실적을 기록했다. 하지만 올해 1분기에는 매출 1조3700억원, 영업이익 1472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각각 4.9%, 8.2% 감소할 전망이다.
출처 : 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