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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운업체가 ‘운임 결정’ 쥐락펴락…제주 농산물 물류비 1년새 20% 인상

작성일 2023.02.20 조회수 170

무·양배추·당근 등 겨울채소를 전국으로 공급하는 중요한 식량기지인 제주지역 농가들이 지난해 폭등한 물류비로 시름에 잠겼다. 무려 20% 이상 오른 물류비로 출하를 포기하는 농가가 속출하는 가운데 현지에서는 해운업체들이 폭리를 취한다는 소문과 함께 담합 의혹까지 제기된다. 3회에 걸쳐 제주 물류비 폭등 원인과 대안을 살펴본다.
 

 

최근 제주지역 물류비가 전년 대비 20%가량 폭등해 농가들이 농산물 출하에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제주 겨울채소 주산지 관계자들은 해운업체들이 폭리를 취한다는 비판과 함께 담합 의혹까지 제기한다. 사진은 제주 한림항에서 선적 대기 중인 컨테이너 모습.

◆해상물류비 1년 만에 20% 폭등…생산자 ‘날벼락’=지난해 12월 양배추를 처음 출하하고 정산서를 받아 든 김학종 제주양배추연합회장은 깜짝 놀랐다. 정산금액이 예상보다 적어 자세히 들여다보니 컨테이너 운송료 항목에 55만원이 찍혀 있었기 때문이다.

김 회장에 따르면 2021년 컨테이너 운송료는 47만원이었다. 운송료가 1년 만에 무려 8만원(17%)이나 오른 것이다. 김 회장은 “직전 10년간 운송료 상승률을 계산해보니 연평균 2.5%에 불과했다”며 “통상 인상폭이 물가 상승률을 크게 벗어나지 않았는데 지난해 비상식적으로 운송료가 폭등한 것”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이같은 정산서를 받은 농가가 김 회장만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애월지역뿐 아니라 성산지역 등 제주 전역에서 운송료 폭탄을 맞은 농가들이 속출했다.

제주 지역농협들에 따르면 제주의 컨테이너 운송료는 2021년 1대당 47만원에서 2022년 55만원으로 17%, 자동화물 운송료는 120만원에서 144만원으로 20% 급등했다. 품목별로는 겨울무·당근 운송료가 20㎏ 한상자 기준 20.7% 폭등했다.

강동만 제주월동무연합회장은 “한쪽에선 최근 3년간 컨테이너 운송료가 40% 이상 올랐다는 분석도 나온다”며 “영세한 농가는 물류비 때문에 출하를 포기할 정도로 심각하다”고 전했다.

 

◆소수 해운업체가 물류비 독단 결정=도가 공시한 ‘해운항만운송사업체 현황’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5월 기준 제주항과 서귀포항에서 27곳이 항만운송사업 가운데 일반 하역업체로 등록했다.

다만 제주항과 서귀포항은 무역항으로 그곳에서 자동화물을 수송하는 일부 해운업체를 제외하면 국내로 이동하는 농산물 상당수는 연안항인 한림항과 성산포항 등에 있는 해운업체 7∼8곳이 전담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농산물 운송료 인상폭은 연안항에 있는 해운업체들이 결정했다. 일반적으로 제주농가들이 컨테이너 운송 방식을 통해 육지로 농산물을 출하하려면 지역에서 소위 알선소로 불리는 해운중개업체와 계약을 맺는 것부터 시작한다.

이들 알선소는 해운업체와 계약된 상태로, 농가들이 농산물을 알선소가 운영하는 적재장으로 보내면 이를 다시 항구로 보내 해운업체 소유 화물선에 싣는 과정을 담당한다.

한편 농가들은 알선소와 계약을 맺으면서 그해 운송료가 얼마인지 통보받는데 알선소 또한 해운업체가 정해주는 운송료에서 수수료를 일부 가져가는 수익 구조라 최종 가격은 해운업체에 달렸다는 설명이다.

한 알선소 대표는 “만약 알선소가 마음대로 가격을 결정했다가 해운업체에서 화물을 배에 안 싣겠다고 하면 영업에 큰 타격을 받는다”며 “알선소는 해운업체가 정한 가격에서 일정 비율로 수수료만 가져가기 때문에 그쪽에서 가격을 올리면 그대로 따를 수밖에 없는 위치”라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해운업체는 왜 지난해 운송료 인상률을 예년보다 10배나 올렸을까? 이에 대해 해운업체들은 크게 두가지 요인을 제시하고 있다. 첫번째는 지난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발발에 따른 국제 유가 상승, 두번째는 화물연대와의 협상이다.

한림항에 있는 한 해운업체 대표는 “선박의 주 엔진을 돌리는 데 쓰는 연료유 가격이 지난해초 1ℓ당 680원이었는데, 7∼8월에 1500원까지 치솟았다”며 “또 육지 운송을 담당하는 화물연대에서 운송료를 20% 인상해달라고 요구해와 해상물류비를 올릴 수밖에 없었다”고 해명했다.

 

◆석연치 않은 해명에 커지는 의혹=제주농가들은 해운업체들의 해명에 석연치 않다는 반응을 보였다. 해운업체들의 주장과 달리 선박 연료값이 안정됐다는 이유에서다.

실제 선박용 연료 공급 거점인 싱가포르의 저유황연료유(VLSFO) 가격은 지난해 1월 1t당 600달러 후반대를 기록했다. 그러다 2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하며 국제 유가가 상승해 6월10일에는 1t당 1149달러로 고점을 찍었다. 하지만 7월까지 1000달러대를 유지하던 연료유 가격은 이후 급격히 하락해 11월 700달러대로 추락했다. 12월부터는 600달러대를 기록해 2021년과 유사한 수준을 보였다.

해운업체들은 지난해 11월부터 운송료를 17∼20%가량 인상했는데 선박용 연료유 가격 추이를 보면 운송료를 인상했을 당시 선박용 연료유 가격은 하락 추세를 보여 운송료 인상 근거로 삼기에는 미흡하다는 지적이다.

의혹은 또 있다. 해운업체들은 운송료 폭등의 주범으로 화물연대를 지목했다. 제주에서 전남 목포항 또는 녹동항까지 농산물을 운송하면 화물연대 소속 조합원들이 물건을 넘겨받아 서울 가락시장 등 목적지로 운송한다.

이에 따라 화물연대와 해운업체는 매년 운송료 협상을 벌이는데, 지난해 화물연대가 20% 인상을 요구해 전체 물류비가 폭등했다는 게 해운업체들의 주장이다.

해운업체들에 따르면 지난해 인상된 컨테이너 운송료 8만원 가운데 화물연대 몫은 6만2000∼6만7000원 수준이다. 사실상 인상된 운송료의 80% 이상이 화물연대 때문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에 대해 화물연대는 터무니없는 주장이라며 맞서고 있다. 지난해 제주 해운업체들과 운송료 협상을 진행한 화물연대 목포지부장은 “비율로 따지면 20% 인상된 것이 맞으나 금액으로 따지면 컨테이너 한대당 1만5000∼2만원 올린 것에 불과하다”며 “화물연대 몫이 6만∼7만원에 달한다는 것은 왜곡된 주장”이라고 반박했다.

제주의 한 양배추농가는 “해운업체는 농가들에게 지난해 인상된 컨테이너 운송료 8만원 가운데 6만원가량이 화물연대 몫이고, 5000원은 도내 운송업체 몫, 나머지 1만원가량이 해운업체 몫이라고 설명했다”며 “화물연대 몫이 2만원 수준에 불과하다면 약 4만원의 행방이 묘연해지는 것인데 누군가 중간에서 폭리를 취하는 것 같다”고 의혹을 제기했다.

 

◆불투명한 가격 결정 구조에 피해는 농민 몫…제주농산물 경쟁력 약화 우려=해운업체와 화물연대가 물류비 폭등 책임을 서로에게 떠넘기는 사이 모든 피해가 제주농가들에게 전가됐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고성관 애월농협 양배추생산자협의회장은 “운송료의 대부분을 누가 가져갔든 결국 모든 인상분을 농가에 전가했으니 해운업체든 화물연대든 손해를 보지 않은 것이 사실”이라며 “모든 원가 상승 부담을 농민들이 떠안는 불투명한 가격 결정 구조가 바뀌지 않으면 이같은 일은 또다시 벌어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특히 물류비 인상이 일회성으로 끝나지 않을 것이 확실한데 이같은 상황을 방치하면 제주농산물의 경쟁력이 급격히 악화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실제 제주의 양배추 포전거래 물량이 예년에는 495만8677㎡(150만평) 수준이었다면 올해는 3분의 1로 급감한 것으로 파악된다.

김 회장은 “제주 물류비가 급등하자 유통인들이 전남지역 농산물을 집중적으로 거래해 제주농가들이 판로를 잃어버렸다”며 “시장에서 거래되는 농산물값은 제주나 다른 지역이나 똑같은데 물류비만 두배 이상 지불하는 상황이 지속하면 제주농업 경쟁력이 급격히 악화할 수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출처 : 농민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