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십년간 세계 경제성장에 큰 영향을 미쳐온 중국의 장기 성장세가 가파르게 둔화되면서 세계 경제 불확실성도 커질 것이다.”(케네스 로고프 하버드대 교수)
중국이 ‘제로 코로나(전면 봉쇄)’에서 ‘리오프닝(경제활동 재개)’으로 전격 선회한 지 한 달이 지났지만 기대는 실망으로, 희망은 우려로 바뀌고 있다.
지난 6일(현지시간)부터 사흘간 열린 전미경제학회(AEA) 연차총회에서 로고프 교수를 비롯한 세계적인 경제석학들은 중국이 세계 경제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UC버클리의 배리 아이켄그린 교수는 중국의 경기둔화로 반도체칩부터 군사적 균형까지 미국과 긴장이 커질 수 있다며, 미-중 간 대립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보다 ‘수십배 더 큰’ 경제적 충격을 촉발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또 세나이 아그카 조지워싱턴대 교수는 “특정 지역(중국) 리스크가 글로벌 공급망을 통해 다른 지역으로 전염된다”며 중국의 경기둔화 위험이 이전보다 더 크다고 지적했다.
우려의 목소리는 이미 현실이 되고 있다. 억눌렸던 소비가 폭발하고 멈췄던 공장이 다시 돌아가면서 경제가 정상화될 것이란 기대는 완전히 빗나갔다. 중국 국가통계국에 따르면 12월 제조업 구매관리자지수(PMI)는 47로, 전달(48)보다 후퇴했다. 코로나19 감염 확산으로 공장이 폐쇄되고 배송이 정체되면서다.
미 경제매체 CNBC에 따르면 홍콩 해운업체 HLS는 최근 코로나19 감염이 급증하면서 중국의 3대 항만(상하이·선전·칭다오) 모두 공급망 배송 문제를 겪고 있다고 밝혔다. 또 노동력 부족으로 공장들이 제때 제품을 만들어내지 못하면서 1~2월 선적 예약을 취소하거나 연기하는 등 물류량이 매우 적다고 덧붙였다.
뉴욕타임스(NYT)는 주방용품을 납품하는 한 업체의 공장 노동자 20%가 현재 병가 중이라며 “코로나19 대확산은 중국의 강점인 풍부한 노동력으로도 이겨내지 못하고 있다”고 전했다.
직격탄을 맞은 곳은 애플과 테슬라다. 애플은 위탁사업자 폭스콘이 운영하는 중국 정저우 공장에, 테슬라는 상하이 공장에 제품 생산의 상당 부분을 의존하고 있다. 하지만 리오프닝 이후 중국 내 코로나19 감염이 더 확산되면서 공장 정상화는 계속 미뤄지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이 기업들에 중국은 생산기지뿐 아니라 핵심 소비처라는 것이다. 애플과 테슬라 매출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각각 17%, 23%에 달하지만 중국 내수시장 분위기는 리오프닝 이전과 달라진 게 없다.
급기야 테슬라 상하이 공장은 지난달 24일부터 문을 닫았다. 이후 지난 3일 생산 재개에 들어갔지만 춘제 연휴를 맞아 오는 20일부터 31일까지 다시 생산을 중단할 계획이다. 전기차를 만들어봐야 팔리지 않기 때문이다.
글로벌 기업들은 서둘러 중국 의존도를 줄이고 있다. 애플은 중국을 벗어나 베트남과 인도 등으로 생산기지를 다변화하고 있다. 일각에선 인도가 2027년이면 애플 ‘아이폰’의 절반가량을 조립 생산할 것이란 전망도 나오고 있다.
전기차 역시 마찬가지다. 오는 9~10일 멕시코 멕시코시티에서 열릴 미국, 캐나다, 멕시코 등 북미 3국 정상회담의 주요 의제 가운데 하나는 전기차 제조 기반 구축이 될 것으로 알려졌다. 이미 멕시코는 공급망 재편 과정에서 미국과 지리적으로 인접하다는 장점을 내세워 교역 규모를 키우고 있다. 지난해 10월 말 누적 기준 미국의 대(對)멕시코 수입액은 3800억달러로, 중국과 유럽연합(EU)에 이어 3번째 규모다.
최근 류쿤 중국 재정부 장관이 올해 재정지출을 확대하겠다고 언급하는 등 지도부가 나서 경기부양 의지를 드러내고 관영매체들 역시 리오프닝을 돌이킬 수 없다며 승리를 다짐하고 있지만 당장의 어려움을 타개할 만한 실제 행동은 보이지 않고 있다.
미 투자업체 루미스세인스앤컴퍼니의 보좡 수석연구원은 CNN방송에 “단기적으로 중국 경제는 혼란을 겪을 가능성이 크다”며 “중국은 코로나19 관련 대처 준비가 미흡했다”고 비판했다. HSBC는 중국 경제가 올해 연간 5% 성장할 것이라면서도 1분기는 0.5% 뒷걸음질칠 것으로 전망했다.
역설적이게도 중국의 코로나19 폭증은 글로벌 원자재와 소비둔화 요인으로 작용해 인플레이션 전쟁을 벌이는 미국과 유럽 등 주요국 중앙은행에 숨통을 틔워주고 있다.
하지만 당장의 물가 압력 둔화가 마냥 반가운 것은 아니다. 글로벌 경기 모멘텀이 약화되는 상황에서 중국의 리오프닝은 수요를 자극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변수다. 만약 세계 2위 경제대국이 정상 궤도에 오르지 못하면 글로벌 경기침체는 더 길고 더 심할 수밖에 없다.
당장 우리나라의 12월 대중국 수출은 전년 동기 대비 27% 감소해 지난해 6월부터 7개월 연속 역성장이 심화되고 있다. 가뜩이나 미국 경기침체가 기정사실화되는 상황에서 중국이 리오프닝에도 제자리를 찾지 못한다면 국내 경기도 점점 더 악화될 수밖에 없다.
앞서 크리스탈리나 게오르기에바 국제통화기금(IMF) 총재는 “중국의 코로나19 방역 완화로 3~6개월간 중국 전역에 감염이 산불처럼 퍼질 것”이라며 “중국은 물론 주변 지역과 글로벌 성장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지적했다.
출처 : 헤럴드경제